[접속]제가 한번 개발자를 만나 봤습니다. - S1 E12 Part2
이 인터뷰는 지난 주에 올렸던 Part1에 이은 인터뷰이다. 이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고, 첫 번째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쌀쌀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사진으로는 겨울 같은 느낌마저 드는…)
앤 같이 일하는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으세요? 선배로서…
혁 일을 하다 보면 열정적일 때가 있고 지칠 때가 있는데 장기레이스에 맞는 동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업무를 백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스트레스 받고 휴가도 잘 못쓰는 상황을 막아주고 싶다.
원 실력이 쌓이고 경력이 될수록 다른 사람 말을 듣는 게 어려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것도 (표현이 이상한가???) 필요하다. 그래서 팀에서 코드리뷰를 하는데, 상하관계를 떠나서 충분히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앤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혁 안타깝게도 어렸을 때 진로에 대해서 폭넓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글쓰기도 프로그래밍과 비슷하게 스스로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만화 시나리오 작가를 했으면 잘했을 것 같다.
앤 지금도 하실 수 있잖아요~ 저도 추리소설 같은 프로그래밍 도서를 내고 싶어요~
혁 저도요!!! 제목도 ‘코더 김씨’라고 정해 두셨다고. 하하하~ 이렇게 시리즈 도서 하나 기획되었습니다. ‘수요공급 살인사건’, ‘아담스미스 구하기’ 같은 경제학을 주제로 한 소설도 있다.
원 사실 프로그래밍이란 직종이 없었다면 선생님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도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음악도 좋아하고 영상과 이야기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혁 요즘 아이들은 연예인이 꿈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원 소위 말하는 ‘인기와 돈’에 청소년들이 다소 과하게 몰리는 것 같기도 하다.
혁 다양한 역할 모델을 접할 수 없고, 평범하게 살면 낙오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서 그렇지 않을까?
앤 어쩌면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요.
원 지금 사회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몇 가지 목표(이를테면 좋은 대학 진학 같은 것) 만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목표의 상위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루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직업이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고 계신가요???
혁 이거다 할만한 취미가 없다. 책보고 잠자고 술 마시고… 남들 다 하는 거~ 스트레스 자체를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 진짜 힘들 때는 사람들을 만나서 하소연을 하면서 해소하기도 한다. (아주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원 개발자들은 스트레스를 좀 흘려 보내는 경향이 있다.
앤 개발자로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혁 개발자라고 특별할 것 없이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개발 방향에 대한 의견과 사람 간의 성향, 취향을 조율하는 것이 어렵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문제를 접할 때 이를 잘 해결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도 있다. 해결했을 때 성취감도 있지만. 담당하는 시스템이 잘 못되었을 때 생기는 큰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혁 개발자 하나가 잘 해서 회사를 잘 되게 하는 상황은 흔하지 않지만, 뉴스에 날만한 큰 에러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개발자는 아주 많다.
원 이렇게 아는 게 없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이 바닥에서 먹고 살다니… 싶은 부끄러운 마음이 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나를 좋게 보거나 높게 보는 일이 생기면 어쩔 줄을 몰라서 스트레스 받기도 한다. 내가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나누고 싶은 욕심에 하고 있다. (스스로의 동기 부여~)
혁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부담되기도 한다.
원 정상혁님은 숨겨진 영웅(unsung hero) 같다.
혁 아~ 나는 그게 좋다 ‘숨겨진’!!!. 개발자가 너무 알려지면 회사에서 맡겨진 일은 소홀히 하고 개인브랜드를 위해서만 힘을 쏟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일을 해도 보다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원 사회적인 교육/공유라고 생각하지만 대중적인 평가보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더 중요한 거 같다.
혁 같은 내용을 반복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서 강의를 하는 일도 한 때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즈음에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흔한 감기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히 설명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해지고 감동을 받았다. 그 의사들은 얼마나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교육이 내 입장에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일이라는 관점보다는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의미를 전달한다는 면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앤 최근에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혁 새로운 것도 적당히 관심 가지고 있지만, 전에는 막 개발 했던 걸 체계적으로 보려고 한다. 자바스크립트나 OS/인프라 등을 조금 더 기초부터 공부하려고 생각 하고 있다. 라이브러리 몇 개를 git hub에 공개해 놨는데, 새롭게 공부한 것들을 적용해 보려고 한다. 빌드도구 분야에서 Maven을 대체하는 gradle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혼자 하는 프로젝트에서 먼저 시도해보고 회사에 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하고 있다. 새롭게 나오는 기술들은 인터넷으로 공부하지만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 분야는 책을 보고 공부한다.
원 최근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계속 자바스크립트와 node.js를 보고 있다. 자바스크립트 자체가 독특한 언어인데 노드는 그걸 재미있고 쉽게 만들어준다. c나 자바처럼 절차적인 프로그래밍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겐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앤 본인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혁 호기심이 많은 개발자!!! 기술에 대한 호기심. 너무 여기저기 호기심만 가지고 얄팍한 지식만 쌓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 적당히 제어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내가 하는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지식에 우선순위를 두려고 노력 중이다.
원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개발자!!!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혁 채수원님은 예술가, 흠… 뭐랄까 동네 화가 같은 느낌이 든다.
앤 예술가라고 하시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보는데요, 개발자들은 왜 다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닐까요???
혁 일단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대부분 개발자들은 거기에 에너지 들이는 자체가 투자 대비 효과가 적다고 생각한다.
원 개발자들이 놓치고 있는 경쟁력 중에 하나가 본인의 스타일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머리가 하도 부시시 해서 다들 머리를 집에서 자르는 줄 안다. 푸하하~
앤 어떤 개발자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원 교훈적인 개발자로 남고 싶다. 좋은 모습은 좋은 모습대로, 안 좋은 모습은 안 좋은 모습대로(반면교사든 타산지석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의 good to great에만 집중하려고 하는데 나는 normal to good에 더 관심이 많다. 평범한 사람(개발자)이 좋은 개발자로 성장하는 것이 위대한 개발자가 되는 것만큼, 아니 overall progress 측면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혁 집요함과 집중력이 있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앤 현재 꿈이 있다면???
이 날 인터뷰에는 백승현님이 지나가는 행인으로 참여해 주셨다.
지나가는 행인 : 장가가기!!!
원 평범하고 평안하고 조용한 환경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랑 즐겁게 지내면서 사는 것이 꿈이다. 풍경으로 묘사하면 한산한 야외 카페에 앉아서 오픈소스 코딩 하다가 지인들 만나서 놀다가 이야기하다 하면서 사는 거. 지금은 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혁 한 일년 동안 회사를 안 나가고 책만 읽고 하는 소원이 있다. 막상 하면 지겨울 수도 있지만…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서 책을 즐기며 보고 싶다. ‘원맨밴드’처럼 인프라, UI 등의 모든 부분을 혼자 구성해서 작은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앤 후배 개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원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다양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보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빨리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건 운이 정말 좋아서인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좋아하는 건지도 따져봐야 한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혁 어렸을 때 프로그래밍에 너무 빠져드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말았으면 한다. 한 때 락밴드를 한다고 평생 락밴드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 어렸을 때 빠져든다고 해서 평생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때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서만 프로그래밍하지 말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다 빨리 느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간단한 게임을 만들다가 고해상도를 지원하기 위해 PC통신으로 바로 쓸 수 있는 그래픽 라이브러리를 찾아봤었다. 어셈블리어로 구현된 좋은 라이브러리가 있어서 봤더니 만든 사람이 중학생이더라. 그때부터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원 그런데 인터뷰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앤 사실 인생이란 것이 정답이란 것은 없는 것이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보통 학생들은 꿈을 찾아서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죠. 아니 어쩌면 꿈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중학교 때는 좋은 고등학교를 위해, 고등학교는 좋은 대학교를 위해, 대학교는 취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은 이미 꿈을 찾았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될 듯하지만 어쩌면 더 불안해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SNS를 통해서 듣는 업계의 이야기는 어두운 부분도 너무 많고, 프로그래밍만 열심히 하다 보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걱정스럽고 막연한 두려움도 느껴지고… 그래서 그들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정말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지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라고 말해주고 싶었고요.
원 정답은 없지만 나는 중고등학교 때는 자기가 좋은 하는 것을 찾아서 책도 많이 읽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혁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정하고 진취적으로 사는 학생들에게 내가 조언을 할 자격이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에 비하면 생각 없이 대학을 가고 그런 조건을 이용해 별로 뛰어난 점이 없었는데도 대기업에 들어간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지나고 나니 좀 더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면 같은 진로를 선택했어도 더 만족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프로그래밍이라는 확신이 들더라도 프로그래밍 외의 지식이 나중에는 쓸모 없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양한 프로그래밍 분야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탐색을 하고 겪어보는 시간을 두는 것도 좋다고 본다. 대학 재학기간이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앤 처음 계획보다 더 많은 개발자를 만나는 이유가 사실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길 바래서입니다.
혁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SW가 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길이 넓어지는 것 같다. 미래가 불투명한 건 이 시대에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반 직장인도 몇 살까지 회사에 있을 수 있을지, 나이 들어서 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프로그래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앤 어떻게 생각해보면 프로그래머들은 비교 대상을 일반 직장인이 아니고 전문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혁 프로그래머는 진입장벽은 높지 않지만 같은 업종 내에서도 받는 대우나 일하는 환경의 차이가 크다. 전문직이라면, 요리사와 비슷하다고 말해야 할까? 갑을병정 문화로 인해 안타까운 현실이 많이 있지만 점점 개발자의 가치를 높게 인정해주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고, 독립개발자나 작은 회사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로써의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는데, 빌 게이츠 같이 한때 프로그래머였지만 결국은 성공한 사업가인 사람만이 이상향으로 제시되는 것이 좀 이상하다. 리누스 토바즈 같이 영향력이 큰 기술을 남긴 엔지니어들을 롤모델로 삼는 사람도 늘어나야 균형이 맞다고 생각한다.
원 자원이 없는 나라이다 보니 프로그래머가 점점 더 유망해질 것 같다.
혁 프로그래밍은 대중화되어서 지식 근로자의 스킬 셋 중에 하나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쓰기, 발표, 오피스 프로그램 다루는 기술처럼. 현재 엑셀로 하는 일들이 옛날에는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작업이었고, 이미 VBA같은걸 할 줄 아는 직장인이 많기도 하다. 더 다양하고 쉬운 프로그래밍 도구들이 보급되지 않을까? 어쩌면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 중 깊이가 있는 개발자가 필요한 비중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더 인정받는 환경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터뷰 후... 이로써 "[접속]제가 한번 개발자를 만나봤습니다."의 시즌 1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이 인터뷰가 처음 진행된지 어느새 5개월이 지났고 현재 시즌 2까지의 모든 인터뷰가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그동안 시즌 1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많은 분들 또 항상 재미있게 봐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한주 쉬었다가 시즌 1의 마무리 글로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Happy Summer!!! by 앤(&)